거부권 행사한 독재자 대통령의 무지와 탐욕

거부권 행사한 독재자 대통령의 무지와 탐욕
정치적 갈등과 혼란, 국정 난맥의 일차적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어제(25일) 국회는 벌집을 쑤신듯이 크게 술렁거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의 재의를 요구하는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박 대통령이 여야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은 예고한 대로 국회 일정 중단을 선언했고, 새누리당은 재의 여부와 유승민 원내대표의 거취를 두고 하루 종일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야만 했다. 이로써 여야 관계와 당·청 관계는 물론이고 여당 내부 친박과 비박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등 정국이 큰 혼란 속으로 빠져 들게 됐다.

이날 박 대통령은 작심한 듯 감정을 격하게 토해냈다. 16분 정도의 국무회의 모두 발언 중 메르스 관련 정부 대응을 뺀 12분을 국회와 여야를 향한 비판에 할애했다는 것만 봐도 박 대통령의 감정이 얼마나 격앙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그녀가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까지도 싸잡아 거세게 비난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일반적인 당·청 관계를 허무는 장면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여당 지도부를 향한 불신의 밀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국무회의는 국회와 여야 정치권을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성토의 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먼저 국회에 대해서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해 과거 정부에서도 통과시키지 못한 개정안을 다시 시도하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며 "국회가 행정입법의 수정 변경을 강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통일되지 못한 채 정부로 이송된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둘러 여야가 합의했다"고 비판했다.

야당을 향해서는 "늘상 정치권에서는 언제나 정부의 책임만을 묻고 있고, 정부와 정부정책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 비판만을 거듭해 왔다"며 "오로지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 삶을 돌보지 않는 이익을 챙기는 구태 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말해 국회법 개정안이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 분노의 카운터 펀치를 날리며 그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다. 그녀는 새누리당을 향해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 달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하기까지 했고, 국회법 개정안 합의를 주도한 유승민 원내대표를 향해서는 "민의를 대신하고 국민들을 대변해야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면서 "저도 결국 당과 후보를 지원하고 다녔지만 돌아온 것은 정치적, 도덕적 공허함"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이날 박 대통령은 그동안 쌓여있던 분노의 감정을 마음껏 분출시키며 국회와 국민을 향해 대한민국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국민 선언을 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국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하사받은 절대적인 것이라 믿었던 태양왕 루이 14세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참을 수 없는 분노와 결사항전의 결기가 여과없이 발산된 이날의 장면은 자가당착과 아전인수의 극치를 보여주는 한편의 모노드라마에 다름이 없었다. 왜 그럴까?

먼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을 완전히 무시하는 독재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여야의 국회법 개정안 합의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과 법학자들이 행정부의 독주를 막기 위해 보다 강력하게 국회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어불성설에 불과할 뿐이다. 의원들 사이의 해석이 통일되지 못한 채 정부에 이송되었다는 부분도 국회법 개정안이 여야 합의를 거쳤다는 점에서 견강부회에 다름 아니다.

국회법 개정안을 야당의 발목잡기로 왜곡하는 부분 역시 아전인수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행정부의 일방 독주로 입법부의 권한이 무력화되고, 이에 따라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이 크게 무너진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여야가 합의한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이 어떤 이유로 발의되었고, 여야 합의를 거쳐 국회로 이송되었는지 본질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자신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법체계에 대한 박 대통령의 무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촌극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앞으로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이 저에게 준 권한과 의무를 국가를 바로세우고 국민을 위한 길에만 쓸 것"이라며 자신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책임을 국회와 여야 정치권에 돌리는 장면에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찬성하는 국민들이 절반에 가깝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부정적 여론이 긍정적 여론보다 더 많은 상황에서 국민을 운운하는 것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또한 국민들이 부여한 권한과 의무를 절대적 권력인 것처럼 남용하고 사유화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저렇게 말하는 것은 후안무치할 뿐더러 지극히 위선적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통해 권력을 독점하고 이를 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행정부의 권한을 (적어도) 삼권분립의 원칙에 맞게 수정하려는 국회의 태도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에 부합하는 바람직한 흐름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잘못된 신념을 바탕으로 한 정치권력의 남용만큼 위험천만한 일도 없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권력을 향한 지나친 탐닉과 법체계에 대한 무지, 고질병인 지독한 불통이 낳은 비극이다. 따라서 향후 발생하게 될 여야의 정치적 갈등과 혼란, 국정 난맥의 일차적 책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 이 점을 분명히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