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토 판매점 주인이 나를 막 부르며 쫓아왔다

                                                                       콩트
 
                                            로토 판매점 주인이 나를 막 부르며 쫓아왔다
 
                                                                두룡거사작 ⓒ
 
내 이름은 용두야.
나는’전국 은행 연합회의 금융 기관 신용 정보 관리 규약에 의한 연체 정보 등록자’야.
간단히 말해서’신용 불량자’야.
아!옛날이여라고 이선희가 노래했지만 정말 내게도 화려했던 옛날이 있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상시 근로자만 자그마치 5000명이 넘는 대기업에서 25년을 성실하고도 당차게 근속하는 동안 이사 대우까지
올라가고는 끝내 대우 꼬리를 못 떼고 그만두기는 했지만 회사에서 비서에다 운전기사까지 붙여 줘서 폼나게
살던 내가 주식 투자 대실패 등으로 개털이 되어 가족과도 생이별하고 10년이란 오랜 잠수 생활을 거치면서
지금은 피폐해진 심신으로 하루하루 연명하기에도 빠듯한 인생을 살고 있으니…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처럼 멍청한 사람도 없다지?
이명박 전 대통령이’과거에 회사 사장을 했어도 은행장을 했어도 현재 돈이 한푼도 없다면 그 사람은 거지가
분명하다’라는 취지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분께서 하신 말씀 중에 이 말씀 한마디만큼은 올바른 말씀 같아.
 
그래서 나는 과거를 깨끗이 잊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비록 거덜난 인생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기로 했어.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신용 불량자가 되고 나서부터 로토를 한 주도 안 거르고 꾸준히 사고 있어.
1등에 당첨될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나마 로토라도 희망을 걸지 않고는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을 것 같았어.
그러니까 그 막연한 착각을 즐기면서 사는 게 이제는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동력이 됐다고 해도 부인할 수 없게
됐어.
 
내가 사는 동네에 로토 판매점이 두 군데가 있는데 한군데는 1등에 두 번이나 당첨된 행운의 판매점이지만 나는
그곳을 마다하고 1등에 한 번도 당첨 안 된 판매점을 단골로 드나들고 있어.
그 판매점에’앞으로 1등에 당첨될 집’이라고 써 놓은 것도 맘에 들었고 젊은 주인 남자가 로토를 사는 손님들한테
일일이’1등 되세요’하고 말해 주는 것도 좋았어.
 
요즘 식당가를 둘러보면 개나 소나’OOO TV에 방영된 집’이라고 홍보랍시고 크게 써 놓은 걸 쉽게 볼 수 있는데
이게 뭐겠어?
방송국 춘추 전국 시대,음식 프로 범람 시대에 식당 주인이 해당 프로 PD나 리포터의 사돈의 십육촌만 지면이
있어도 방송에 그 식당이 소개되는 건 누워서 천장 보기 아니겠냐구?
그런 맥락에서 언젠가 어느 식당에’KBS,MBC,SBS 등 방송 프로에 단 한 번도 방영되지 않은 집’이라고 써 놓은
문구가 외려 호감이 가더라구.
그래서 그랬는지’앞으로 1등에 당첨될 로토 판매점’이’1등에 두 번 당첨된 로토 판매점’보다 더 좋았고
빈말이라도’1등 되세요’하는 주인의 멘트가 식상하지도 듣기 싫지도 않았어.
 
나는 로토 당첨번호를 아주 천천히 확인하는 습관이 배어 있었어.
추첨이 있는 토요일 저녁은 고사하고 일요일,월요일을 지나 목요일 저녁이나 돼야 지난 주 로토를 확인하는
식이었어.
굳이 그럴 필요가 뭐가 있냐구?
늦게 확인하면 안 맞은 번호가 맞은 번호로 둔갑이라도 하냐구?
그게 아니고 내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어차피 안 되는 게 로톤데 그’착각하는 행복의 시간’이라도 좀더 오랫동안
향유해 보자는 게 내가 당첨 여부를 늦게 확인하는 이유라구…
그래서 나는 로토 판매점을 지나갈 때마다 일부러 고개를 푹 숙이고 땅바닥만 쳐다보면서 지나가곤 했어.
로토 판매점에 걸어 놓은 당첨번호 안내 전광판을 일부러 안 보려고 그러는 거였어.
 
내가 매주 금요일마다 그 판매점에 로토를 사러 가는데 내가 로토를 많이 사는 건 아니지만 나의 특이한 로토
구매 방식 때문에,또 근 6~7년을 한결같이 찾아오는 단골손님이라 그랬는지 주인은 나한테 유독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
나도 25살 나이 차 나는 주인한테 말을 놓고 지냈어.
 
특이한 구매 방식이 뭐냐구?
나는 로토가 어차피 안 될 게 뻔한 게임이라면 언젠가의 한판 승부라도 기대하면서 내가 로토를 구매하기 시작한
이래 몇 줄을 사더라도 언제나 똑같이 조합한 여섯 개의 번호로 마킹하고 있어.
그러니까 만일 내가 수동으로 찍은 번호 여섯 개가 1등에 당첨되면 내가 산 줄의 숫자만큼 모조리 1등을
싹쓸이하는 거라구.
아,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있으면 잠이 다 안 온다니까…
 
좋게 말하면 소신이고 안 좋게 말하면 미련스럽기 짝없는 나의’자나깨나 여섯 개 고정 번호 밀어붙이기’를 주인이 일찌감치 간파하고는 자기 마누라 전화번호는 몰라도 내가 찍는 로토 번호 여섯 개는 알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어.
 
지난 월요일이었어.
나는 볼일이 있어서 이른 저녁을 먹고는 외출을 했어.
버스를 타려면 그 로토 판매점을 안 지나갈 수가 없어서 그 판매점 앞을 지나갔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전광판을 안 보려고 고개를 처박고 지나갔어.
 
그때였어.
로토 판매점 주인이 문을 박차고 튀어나온 것은.
내가 나이에 비해서 걸음이 빠른 편이어서 주인이 나를 보자마자 튀어나왔을 텐데도 주인과 나와의 거리는
상당히 멀어졌고 주인은 사장은커녕 전무도 상무도 아닌 나한테’사장님!’하고 막 부르며 쫓아오고 있었어.
 
그때 내 심장은 마구 고동을 쳤어.
로토 판매점 주인이 판매점에서 왜 튀어나왔겠냐구?
그 판매점에서 판매한 로토가 지난 주 1등에 당첨됐는데 당첨번호가 마침 주인도 익히 알고 있는 내가 매주 찍는
그 번호였고 내가 목요일이나 돼야 당첨번호를 확인한다는 걸 알고 있는 주인이 그 기쁜 소식을 나한테
한시라도 빨리 알려주려고 내가 판매점 앞을 지나가는 걸 보고는 용수철처럼 튀어나와서는 나를 목청 높여
불러 대는 게 아니겠어?
 
아,그런 이유가 아니고는 주인이 나를 허겁지겁 쫓아올 리도 나를 큰소리로 부를 리도 전혀 없는 거잖아?
아,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이제 나의 외롭고도 지긋지긋한 잠수 10년은 종지부를 찍고 춥고 캄캄하기만 했던 음지를 벗어나 따뜻하고 밝은
양지로 드디어 나가게 됐구나…
아,내가 신용 불량자라 내가 직접 가면 농협은행 본점에서 액면대로 당첨금을 지급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누구를
내세워서 당첨금을 수령해야 하나?
아,내가 고정으로 베팅하는 번호가 십의 자리,사십의 자리를 아예 빼고 조합한 희귀한 번호이기 때문에 그 번호의 당첨금은 어림잡아 20억 원 이상은 될 거고 내가 다섯 줄을 베팅했으니까 당첨금 총액이 세금을 공제하더라도
얼추 67억 원은 실수령하게 되는 건가?
 
67억 원!
그 큰돈으로 뭘 해야 하나?
이제는 무엇보다도 안전빵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할 텐데?
만만한 찜질방이라도 인수해서 해 볼까?
중소 도시의 자그마한 빌딩이라도매입해서 월세라도 받아먹어?
이것저것 신경 쓰기 전에 우선 부채부터 깨끗이 정리해?
에이,그럴 거면 뭐하러 다른 사람을 내세워 당첨금을 수령하게 해?
그동안 연체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갚아야 할 돈이 장난이 아닐 텐데?
아니면 돈 있는 티를 조금도 내지 말고 비겁하고 쪼잔하고 귀찮더라도 신복위 프로그램 등을 통해 느긋하게 장기
상환하는 쪽을 택해?
아,내가 직접 당첨금을 탈 것인가,나 대신 당첨금을 탈 사람을 누구로 정해야 할 것인가,당첨금을 타고 나면
그 돈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 등등,이런 급작스런 상황에 대비해서라도 평소에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웠어야
하는 건데 막상 닥치고 나니까 엄청 혼란스럽네…
 
나는 애써흥분을 감추고 괜히 침착한 척 인터벌까지 주면서 고개를 뒤로 돌리며 심드렁하게 말했어.
“왜 불러?날 부를 이유가 없잖아?”
세상에 나 같은 포커페이스가 어디 있을까 싶었어.
“사장님,저 내일부로 가게 문 닫습니다.”
나는 주인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접하고 몸이 갑자기 굳어지는 것 같았어.
잠깐이긴 했지만 내 멋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쳤던 게 어처구니없고 부끄럽고 너무 허망했어…
 
“아,그래?그것 참 은근히 서운하네…근데 뭘 그렇게 숨넘어가면서까지 나한테 보고할 게 뭐 있나?내가 무슨
대단한 손님이라구?”
“사장님,제가 나중에 자료로라도 활용할 일이 있을까 싶어서 그동안 신문지를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모아 놨는데
그게 몇 년 되다 보니까 양이 꽤 되네요.제가 신문지를 창고에서 꺼내놓을 테니까 리어카를 갖고 오시죠…”
 
나는 아까 놀란 만큼은 아니지만 또 놀랐어.
주인이 내가 파지를 주우러 다닌다는 걸,고물 수집을 하러 다닌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하고 말이야.
낮에는 라이벌(?)이 하도 많아서 물량 확보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 같고 또 그 라이벌의 대부분이 나보다 적어도
십 년 이상은 연상으로 보이는 인생 선배님들이라 그분들 사이에서 설쳐 대는 게 죄송스럽기도 해서 내 딴은
머리깨나 쓴다고 매일같이 자정이 넘어서야 슬며시 집에서 나와서는 고물을 줍다가 동이 트기가 무섭게
고물상으로 가서 새벽같이 나오는 고물상 사장한테 고물값을 받고는 그랬던 건데 로토 판매점 주인이 어떻게?
더군다나 주인한테 고물의’고’자도 파지의’파’자도 내 입으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음,내가 고물 줍는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며칠 전에 제 친구랑 노래방에서 나오는데 한창 고물을 줍고 계신 사장님을 봤거든요.사장님,왜 리어카
가지러 안 가시고 그렇게 마냥 넋을 놓고 계세요?신문지는 일반 파지보다 값을 더 쳐준다고 그러던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시네요?제딴에는 오늘 아니면 사장님을 뵐 수가 없을 것 같아서사장님이 지나가시는 걸
목격한 순간 바로 튀어나온 건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