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와 정동영, 신당창당 도전과 미래

한국정치와 정동영, 신당창당 도전과 미래
관악을 재보선 당락떠나, 정동영은 천정배와 함께 미래입지 다져

정동영은 한국의 정치인 중에서 고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곤 가장 고난과 시련을 겪은 정치인 중의 한명일 것이다. 일찌기 노무현 대통령과 대선 후보 경선에서 끝까지 완주하여, 노무현으로 부터 차기 후계자 감으로 인정받고, 당의장,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였고, 2007년 대통령 후보로 이명박과 경쟁하여 패배하는 역할을 했었다.

돌이켜 보면 정동영은 1996년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발탁되어 전도가 밝은 정치인으로 성장하였으나, 17대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치인으로서 걸어온 길은, 본인의 의지 보다는 대부분 타의에 의해, 그것도 그를 견제하는 정치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던 점이 매우 크다고 본다.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를 역임했던 김대중, 김영삼과 김종필씨 등은 낙선 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에서 전국구를 주거나 안전한 자기 지역구에 공천을 주어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게 하고, 국회에 등원하게한 역사가 생생한데도 불구하고, 대선에서 낙선한 정동영에게 2008년18대 총선 때 서울 동작을에 차출시켜 서울시 재개발을 주도한 재벌 정몽준의 광풍에 몰아넣어 낙선시킨다.

2009년 4.29 보선에서 자기가 두번씩이나 전국 최다 득표를 했던 전주 덕진, 종전의 자기 지역구에, 그를 경원시했던 지도부와 486 등 반대 세력들에 의해 당에서 쫒겨나다시피해서, 결국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국회에 등원한다. 그가 원내에 진입하여 실천했던 당 내 민주주의 실현, 당원의 권리 보장과 보편적 복지 추진, 경제 민주화와 부자 증세, 친 노동 정책 등 민주당에 반듯히 필요한 정책을 주창했으나 당은 이를 묵살한다. 2012년 총선에서는 전혀 희망이 없는 강남으로 보내 비례대표 초선의원과 공천 경쟁을 시키는 수모까지 주어, 사지에서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 민주당의 지도부였다.

그와 반대로 새누리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등 정동영이 주장했던 정책을 도용하여 결과적으로 대선에서 승리를 쟁취한다. 지난해 정몽준의 서울시장 선거로 공석이 된 보선에서 정동영과 연고가 깊은 동작에서 민주당은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 그를 당선 시켜도 부족할 판에, 아예 발을 붙히지 못하게 하여, 당내에서 자중지란을 겪은 후에 나경원에 국회의원을 진상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견제와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민주당-새정치연합에 잔류하면서, 자신들이 정책을 폈던 신자유주의 정책이 결국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참여정부의 과오에 대해 후회하고 정치인으로는 유일하게 진지하게 반성을하고 절절한 반성문을 썼다.

그는 이러한 과오를 반성하듯 각종 거리의 집회에 빠짐없이 나타나서 지지자들로 부터 "거리의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그가 하는 일련의 행동이 위선으로"쇼"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쇼"라해도 정동영 처럼만 하라며 국민들의 신임을 받았지만, 원외로써 그의 길이 서민 대중을 위해서는 정당했으나 늘 험난하고 외로웠다.

그는 비정규직, 실업자, 중소 자영업자, 노동자 농민 등 한국 사회의 약자들의 삶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울어주는 정치인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당 내에서는 알량한 고문자리 하나 주면서 손발을 묶어두며 정치인으로 시베리아에 유배 시킨거나 다름없었던 상황이 정동영의 처지였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세균 교수 등이 추진하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자는 국민모임에 합류하고 관악에서의 새로운 도전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국민모임에 참여하기 바쁘게 관악을 등 보궐선거가 실시되었고, 국민모임으로서는 모임의 존재 이유와 세력 확장을 위해서 정동영의 관악을 출마가 절실했다. 그러나 국회의원 한 명 없는 무경험의 국민모임이 여당과 야당을 넘고, 한국의 재벌, 대기업과 보수 유권자를 상대로 힘없고 조직화 되어있지 않은, 서민,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 영세 자영업자, 노동자 농민의 힘을 모아 정권을 찾는다는 목표는 참으로 지난한 과업일 것이다. 그러한 지난한 일에 선두에 선 정동영으로서는 그야말로 1년짜리 국회의원 배지가 그렇게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동영은 지난 달 30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발표한 출마선언에서 무엇이 되겠다는 것 보다, 몸을 던져서 이 상황을 바꿔보겠다며 현재를 바꾸고자하는 국민과 함께 노력 하겠노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가 이번 새민련을 탈당하고 국민모임에 참여하니, 그야말로 전 대통령 후보며 당 고문인 사람이라고 외치면서 의리 없고 몰염치한 사람으로 매도했다.

광주서을에서 출마한 천정배와 정동영의 행보에 대해서 여러 평가가 엇갈렸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대선 주자와 당 대표, 원내대표, 법무부장관과 통일부장관 등 요직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한 이들이 탈당 후 당에 대한 공세를 퍼붓는 것이 일종의 배신행위라는 것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모임의 정동영과 무소속천정배의 도전은 158명의 매머드 여당과 130명의 거대 여당을 상대하는 전대미문의 다윗과 골리앗의 158명의 싸움이다.

값을 쳐주지도 않고 뒷방으로 쫒겨나다시피한 천정배와 정동영이 각각 출마하자 새민련의 문재인 지도부는 모든 조직을 총 동원하여 광주와 관악에서 상주하다 시피 한다. 물론 성완종의 부패 리스트에 봉착한 정부 여당도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 어느 선거 때 보다도 총력을 경주하여 새누리당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 이는 결국 광주에서의 천정배가 관악에서는 정동영이 새누리당과 새민련의 국회의원 288명을 상대로 해서 싸우는 형국이 된 것이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상파와 종편은 물론 친 보수 매스컴에서는 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구사하여 이들을 공격했을 것이다. 또한 여론 조사 기관은 각각 다른 여론 조사를 방영하여 국민의 건전한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서울시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는 26일 “지난 4월17일부터 20일까지 ‘리서치뷰’가실시한 관악을 국회의원 선거 여론조사가 위법하다”고 결정하기에 이른다. 공정심의위원회는‘리서치뷰’가 실시한 여론 조사가 공직선거법 제108조 및 선거여론조사기준 제4조의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결정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정태호 후보가 이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하여, 정태호>오신환>정동영 순으로 여론 조사 결과 수치까지 넣어 게시한 수많은 선거 현수막을, 즉각 철거하도록 명령하고 이 여론 조사 결과도 공포와 보도를 금지했다.

한편, 선거 여론 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하루 전인 22일 ‘리서치뷰’조사를 통해 이제까지 한번도 1등을 차지하지 못했던 정태호 후보가 1위를 차지하자, 새누리당에서는 여론조사가 여론조작이라고 강력하게 의의를 제기하고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했고, 정동영 후보측에서도 30대 지지율에서 정동영 후보가 0.9%를 얻는 반면 정태호 후보는 61.9%를 얻는다는 등의 공정성이 결여된 듯한 조사가 발표되자 이를 선관위에 조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배경에는 관악구 주민들은 1988년 소선거구제 실시 된 13대 이후 이제까지 실시된 선거에서 마지막에 야당 후보 중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양 진영에서는 여론 조사 공표 마지막에 상대에 비해 더 좋은 결과를 얻어, 야당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찾았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이번 4.29보선의 정치적 의미는 ‘문재인을 검증하는 시험대’로 집약되었고, 문재인 대표측에서는 당력을 동원하여 정동영과 천정배의 낙선을 위해서 총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정동영-천정배의 미래

이번 보선을 계기로 천정배가 광주에서 정동영이 관악에서 출마함으로서 4군데의 보선이 가히 전 국민의 관심을 갖게 되고, 새누리당의 김무성과 새정련의 문재인 등 대부분 한국의 정치인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특히 야당의 친노 진영과 동교동계가 엑스트라로 출연하여 정치 무대를 활보했다. 문재인은 석연치 않은 여론조사를 통해서 박지원을 이긴 후에 실시된 첫 번째 중요행사로써, 이번 선거 결과에 그의 정치적 사활이 걸린 것으로 알고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문재인에 패해 비주류와 호남의 거두로 떠 오른 박지원도 권노갑을 끌어들여 무대를 장식했다. 박원순을 제외하고는 안철수 등 웬만한 야당 대선 후보 정치인들은 이번 보궐선거에 등장하였다. 그러나 과연 이번 선거에 출마한 정동영-천정배의 미래는 어떨까?

호남을 개혁하자는 천정배의 성공은 호남에 뿌리를 둔 새민련과 호남 출신 국회의원들의 입지가 뿌리채 흔들릴 것은 자명한 바, 이들의 천정배를 상대로 한 싸움은 처절할 정도다. 또한 정치 생명이 다한 것 같은 정동영의 관악을 출마는 새민련의 대부분 정치인들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무서운 일이다. 그들이 몇 년 동안 정동영에 가한 행동이 있고 그의 파괴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천정배가 광주 서을에서, 정동영이 관악을에서의 당락과 별도로 죽어가던 두 정치인이 정치인으로 활기차게 부활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 작은 보선에서 천정배와 정동영은 새민련 의원 130명을 상대로 대결한 정치적 행동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와 서울 관악에 진을 치다시피한 모든 국회의원, 지방 의원 그리고 당원들을 보면 정동영과 천정배의 위력이 그렇게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스컴과 SNS를 통해서 본 새민련 국회의원 들의 도열된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못해 처절한 느낌이 든다.

물론 문재인의 부름을 받고 여기 저기 불려 다녀 이용당한 권노갑, 임채정, 문희상, 한명숙, 박지원 등은 한낮 힘없는 뒷방 늙은이들로 전락해 버린 선거일수도 있다.

문재인은 의심이 많은 여론조사로 무리하게 주자로 내 세운 정태호 후보 때문에 관악에서 신임을 받고, 지지 기반이 튼튼한 김희철에게 겨우 0.6% 차로 승리하고서 김희철의 지지를 끝내 이끌지 못했다. 그 결과 현지에서 지켜 보고 두번씩이나 최고 득표를 기록한 이행자 시의원과 소남열 구의원이 지난 20일에는 당원 1,000여명과 함께 집단 탈당을 했다.

그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 몸담았던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다"고 밝혔다. 이날 부로 무소속이 된 이 의원은 곧 4•29 재•보궐선거의 관악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동영 후보 측 국민모임에 합류, 힘을 보태고 있다. 관악을의 민주당 정통성이 정동영에게로 넘어간 사건이다.

제8대 서울시의회 의원을 지낸 김용성(강서구), 임형균(성북구), 곽재웅(성동구) 등 세 명은 21일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26일에는 김기옥(강북구), 김정중(강북구), 정희석(은평구) 전의원은 탈당과 함께 국민모임 정동영 후보를 지지할 것을 공식 선언하고 합류했다.

한편 광주 호남지역에서 원로로 존경을 받고 있는 전 감사원장 전윤철씨가 천정배를 지원하고 나섰다. 물론 천정배는 시의원과 구의원 및 다수의 당원들의 지지를 받고 여론 조사에서 줄곧 수위를 달리고 있다. 관악을에서는 야당 성향의 정의당, 노동당 등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고, 전 통진당 의원 이상규도 20일에 후보를 사퇴하여 사실상 정동영을 중심으로 기타 야권이 뭉친 결과가 되었다. 결국 정동영은 천정배와 함께 29일 선거의 결과에 관계없이 그들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명분을 충분이 얻은 것이다.

정동영이 “제 몸을 불사르겠다고 결심했다.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에게 기댈 곳을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한 목표와 천정배의 호남에서 새민련의 독점 체제를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게 바꿔야 한다. 새판을 짜야 한다”는 명분을 충분히 찾았고, 그들이 밖으로 주장하는 정권 심판과 야당을 개혁하여 정권 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는 결의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당락을 떠나, 정동영은 천정배와 함께 정치 생명을 건 이번 도전에서 그의 미래의 입지를 다졌다.